
2009년 개봉한 《유감스러운 도시》는 이범수, 정준호, 손창민, 박예진 등 화려한 캐스팅과 함께 조직폭력과 경찰 사이의 치열한 전쟁을 익숙한 ‘누아르’ 스타일로 시작하다가, 곧 풍자와 패러디로 뒤집어버리는 코믹 누아르 액션 영화입니다. 진지한 척 하지만, 사실은 매우 유쾌하고 B급 정서가 가득한 이 작품은 장르를 교묘하게 뒤섞으며 관객에게 반전의 웃음을 선사합니다. 유치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 낯익지만 어딘가 어긋난 전개는 관객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며 색다른 영화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1. 누아르의 외피, 코미디의 실체 – 장르의 전복
《유감스러운 도시》는 시작부터 전형적인 한국형 느와르 영화의 분위기로 관객을 끌어당깁니다. 화면 톤은 어둡고, 대사는 짧고 거칠며, 배경은 조직폭력과 마약을 둘러싼 음모로 가득합니다. 주인공 장철구(이범수)는 한때 이름을 날렸던 조폭 출신이자, 현재는 정치 진출을 노리는 인물로 상당히 무게감 있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 진지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곧 등장하는 캐릭터들 – 엉뚱한 형사 장준혁(정준호)과 허세 가득한 정치인, 쓸데없이 과장된 조폭들 – 모두 어딘가 ‘진짜 같지 않은 진지함’을 품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마치 “진지한 걸 진지하게 흉내 내는 코미디”처럼 정통 느와르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그 안에 유치한 유머를 교묘히 끼워 넣습니다.
- 과장된 액션 장면
- 의미 없는 총질
- 진지한 장면에서 터지는 엉뚱한 음악
- 예상과 다른 흐름의 전개
이 모든 요소가 모여 장르를 비틀고 조롱하는 메타 유머로 작용합니다. 결국 영화는 느와르의 외양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형 범죄 코미디에 대한 풍자극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진지함과 유쾌함의 충돌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이자 매력입니다.
2. 캐릭터들의 향연 – 유쾌하고 엉뚱한 ‘놈놈놈놈놈’
이 영화의 진짜 힘은 개성 강한 캐릭터들입니다. 이범수, 정준호, 손창민, 박예진은 각기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가진 인물로 등장하며 서로 충돌하고 연합하고 배신하면서도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완성해 갑니다.
이범수의 장철구는 처음에는 진지한 조폭처럼 보이지만 점점 허세와 인간적인 허점이 드러나며 웃음을 유발하는 인물로 변합니다. 극 중 정치인으로 변신하려는 그의 행동들은 현실 속 권력의 이면을 풍자하면서 ‘진짜 조폭보다 더 조폭 같은 정치판’을 비꼬는 장치가 됩니다.
정준호의 장준혁 형사는 정의감 넘치지만 허당기 가득한 인물로, 액션과 수사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계속해서 어설픈 실수와 난감한 상황에 부딪힙니다. 그의 존재는 극의 무게를 줄여주며 관객이 가장 편하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
또한, 손창민이 연기한 정윤태는 비열하면서도 어딘가 인간적인, 웃기지만 위협적인 악역의 정석입니다. 특히 그가 보여주는 과장된 분노와 허세는 극 중 많은 웃음을 책임지는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박예진의 여성 캐릭터 역시 단순한 러브라인용이 아닌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며 전개를 이끄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스타일의 캐릭터들이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유쾌한 에너지의 원천이 됩니다.
3. B급 정서로 바라본 사회 풍자 – 웃으며 씁쓸한 진실
《유감스러운 도시》는 단순한 웃음만을 위한 영화는 아닙니다. 겉으로는 유쾌한 범죄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 부패, 정의 실현의 허구성 등을 은근히 풍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정치’와 ‘조직폭력’의 경계가 희미해진 설정입니다. 조폭 출신이 정치인이 되고, 형사가 조폭과 공조하며, 범죄자들이 법망을 빠져나가는 모습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닌 현실에 대한 비꼼으로 다가옵니다.
영화는 그것을 과장하고 희화화함으로써 “이게 말이 되냐?”라는 웃음 속에 “근데 어쩌면 진짜 이럴지도 몰라”라는 현실 인식을 던집니다. 이러한 메시지 전달 방식은 무겁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관객의 머릿속에 남는 힘을 지닙니다.
무엇보다 웃음을 유도하면서도 한 발 물러나 그 웃음의 본질을 되묻게 만드는 절제된 연출이 이 영화의 ‘B급 명작’으로서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유감스러운 도시》는 장르적 패러디와 풍자, 개성 강한 캐릭터, 예상 밖의 전개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코믹 누아르입니다.
익숙한 소재와 설정을 익숙하지 않게 풀어내며, 관객의 기대를 계속해서 빗나가게 만드는 이 영화는 유치하지만 웃기고, 과장됐지만 날카로운 시선을 지닌 매력적인 B급 영화입니다.
진지한 듯 장난스럽고, 웃긴 듯 씁쓸한 이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영화적 실험이며, 한국 영화가 시도할 수 있는 장르 확장의 한 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 영화. 《유감스러운 도시》는 그런 유쾌한 역설로 기억될 만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