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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영화 리뷰 (사극, 전쟁풍자, 계급역전)

by 하고재비 라이프 2025.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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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영화 사진
평양성 영화 사진

 

 

‘평양성(2011)’은 <황산벌>의 후속작으로, 백제와 신라의 전투 이후를 다룬 사극 코미디 영화입니다. 감독 이준익은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계급사회와 권력 구조의 부조리함을 풍자하며, 진지함과 유쾌함을 오가는 독특한 연출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전쟁의 비극을 웃음으로 풀어내며, 역사와 현대 사회를 동시에 비춰보는 코미디 사극의 진수로 손꼽히는 영화입니다.

1. 전쟁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풍자 코미디

‘평양성’은 역사적 전투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무겁고 처절한 전쟁의 이미지를 벗어나 유쾌한 풍자와 블랙코미디로 접근합니다. 전작 <황산벌>이 신라와 백제의 갈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면, 이번엔 통일 전쟁의 이면에 있는 계급 구조와 권력 다툼을 더 깊이 있게 다룹니다. 신라 장수 김유신(정진영), 백제 장수 흑치상지(이문식), 평양성의 마지막 수비대원까지 각 인물은 단순한 전쟁의 희생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보통 사람의 상징처럼 그려집니다. 특히 전쟁 상황 속에서도 말장난, 계급 간 갈등, 부조리한 명령 체계 등을 풍자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왜 싸우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관객은 웃고 있지만, 웃음 너머로 전쟁의 본질, 인간의 어리석음을 곱씹게 되며, 이는 단순 코미디가 아닌 사회적 메시지를 품은 블랙유머로 작동합니다. 이처럼 ‘평양성’은 코믹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역사 해석을 시도하며, 지금 시대의 정치와 사회를 떠올리게 하는 풍자의 거울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2. 계급과 권력 구조의 아이러니한 묘사

이 영화는 단순한 사극이 아니라, 고대 전쟁을 배경으로 한 계급 풍자극입니다. 전쟁터에서 죽어나는 병사들과는 달리, 지휘관과 귀족들은 자신의 체면과 권력 유지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반복되며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도 닮은 현실을 드러냅니다. 백제에서 도망쳐 온 흑치상지는 충성심보다는 생존을 택한 인물로 그려지고, 김유신은 무능한 상관의 명령과 정치적 이해관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실적인 장수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묘사는 당시의 상황을 풍자하면서도, 위계 속에서 무너지는 인간성의 허상을 비틀어 보는 묘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또한 평양성 내부에서의 갈등도 흥미롭습니다. 귀족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권력 다툼에 더 열중하며, 백성은 성문 하나에 갇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존재로 남겨집니다. 이러한 대비는 결국 “전쟁에서 진짜 희생자는 누구인가?”, “정치의 본질은 국민을 위한 것인가, 권력 유지인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이준익 감독은 이러한 주제를 유머로 포장했지만, 결코 가볍게 흘려보낼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3. 연기, 대사, 연출이 살아 숨 쉬는 고품격 사극

‘평양성’의 또 다른 강점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대사, 그리고 이준익 감독 특유의 연출 감각입니다. 정진영, 이문식, 류승룡, 윤제문 등 탄탄한 배우진이 각자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무거운 주제도 부담 없이 풀어나갈 수 있는 설득력을 제공합니다. 특히 이문식은 흑치상지 역할을 통해 겁쟁이 같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며, 그의 대사는 많은 장면에서 웃음과 동시에 씁쓸한 현실 인식을 자극합니다. 감독은 이 인물들을 통해 권력자와 민초의 시선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군더더기 없는 구성과 빠른 전개로 영화의 흐름을 쥐고 갑니다. 또한 미술과 의상, 전쟁 장면의 리얼리즘도 수준급입니다. 화려한 전투 장면 없이도 긴장감 넘치는 심리전과 대화 중심의 전개를 통해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 중심 사극’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특유의 언어유희와 말맛이 살아 있는 대사들은, 이 영화가 단순히 웃기기 위한 코미디가 아니라, 말속에 진실을 숨긴 고급 풍자극임을 증명합니다.

‘평양성’은 단순한 전쟁영화도, 유쾌한 코미디도 아닙니다. 웃음과 함께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사회 풍자 사극이며, 지금의 세상에도 유효한 통찰을 전해주는 시간을 초월한 이야기입니다. 역사를 유쾌하게, 그러나 날카롭게 바라보고 싶다면, ‘평양성’은 꼭 한 번 다시 꺼내보아야 할 가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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